테마·나들이

조선 도읍지 한양의 궁궐 '경복궁'

산내들.. 2015. 9. 9. 11:08

'경복궁'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세운 이성계와 그 지지자들은
고려의 서울인 개경으로부터 도읍을 한양성으로 옮겨
신도 경영에 착수하는 동시에 궁궐의 조성도 착수하였다.
1394년(태조 3) 9월 신궐조성도감을 두고 임좌병향의 터를 잡았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태조는 수도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12월 3일에 궁궐과 종묘를 짓겠다고 산천신에게 고사하고,
주야로 작업을 진행하여 1395년 9월에 낙성을 보게 되었다.
명칭은‘군자만년 개이경복’이란 글귀를 따서 경복궁이라 하였다. 

 

 

 

 


 

 

 

광화문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되어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으로 명명되었고 오문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년)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고 바꾸었다.
광화문은 석축기단에 3개의 홍예문를 만들고 그 위에 정면 3칸의 중층우진각 지붕으로 된 목조문루를 세웠다.
목조건축의 양식은 다포식으로 상하층이 모두 외이출목·내삼출목, 외부는 제공 뿌리를 쇠서로 하고,
내부는 운공을 만들었으며, 첨차 양측면에는 모두 파련초각을 하였다.
이 건물은 섬세한 수법과 웅대한 구조를 보여주고,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장려한 외관을 지닌 가장 뛰어난 궐문으로 평가되었다.

 

 

 

 

 

 

 

 

 

 

 

 

홍례문


창건된 것은 1395년(조선 태조 4)으로, 원래 이름은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867년(고종 4)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중건하면서
청 건륭제의 이름인 홍력에서 홍자를 피하기 위해 흥례문으로 고쳤다고 한다.

 

 

 

 

 

 

 

 

 

 

 

 

 

 

 

 

 

 

 

 

영제교


경복궁의 광화문과 흥례문을 지나면 영제교가 나오고, 이곳을 건너면 정전인 근정전으로 통하는 근정문이 나온다.

다리 아래로 흘렀던 명당수 금천은 입궐하는 신하들의 마음을 씻고, 액을 물리치는 역할을 했다.
석축에 조각된 천록 또는 산예라 불리는 뿔 달린 짐승 역시 잡귀를 물리치는 상징이었다.
세종 때 집현전에서 영제교라고 명명하였다.

 

 

 

 

 


 

 

 

근정문(보물 제812호)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4년인 1392년에 지어진 건물이며,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67년(고종 4) 중창되었다.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근정전의 대문으로 가치가 평가되어, 1985년 1월 8일 보물 제812호로 지정되었다.

근정문은 근정전 앞 금천교 건너편에 있는 문으로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이며, 외삼출목·내삼출목의 다포집 우진각지붕이다.
3단의 기단위에 세워져 있으며 둥글게 다듬은 초석위에 기둥을 세웠다.
정면에는 계단에는 봉황 2마리가 새겨진 답도를 깔았고 양쪽으로 서수 2마리가 놓여있다.
계단의 폭마다 당초문을 섬세하게 조각하였다.

 

 

 

 

 

 

 

 

근정전(국보 제223호)


조선왕조 정궁의 정전답게 중층의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장대한 건물이며
건물의 양식은 조선 말기에 속하여 세부의 장식적 처리가 두드러진다.
근정문(보물 제812호)은 정면 3칸의 중층지붕건물이다.
근정문 좌우로는 행각이 연결되어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다.

 

 

 

 

 

 

 

 

 

 

 

 

 

 

 

 

 

 

 

 

 

 

 

 

사정전(보물 제1759호)


1395년 태조 때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건립되었고 '사정'이라는 편전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다.
이곳은 경복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평상시에 머물면서 정사를 펼치던 곳이었다.
정전인 근정전 바로 뒷편에 위치하며 사이에 사정문이 있고 사정전 뒤로 향오문을 통해 강녕전으로 연결된다.
건립당시에는 좌측에 가을과 겨울이면 이용하는 천추전과
우측에는 봄에 이용하는 만춘전이 서로 행랑으로 연결되어 쉽게 건너갈 수 있게 하였다.

 

 

 

 

 

 

 

 

 

 

 

 

 

 

 

 

 

 

 

 

아미산 굴뚝(보물 제811호)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의 온돌방 밑을 통과한 연기가 나가는 굴뚝이다.
고종 2년(1865) 경복궁을 중건할 때 만든 것으로 현재 4개가 서 있는데
6각형의 굴뚝 벽에는 당초무늬와 해태, 불가사리 등의 무늬를 조화 있게 배치하였다.
각 무늬는 조형전을 구워 배열하고 그 사이에는 회를 발라 화면을 구성하였다.
십장생, 사군자와 장수 부귀 등 길상의 무늬 및 화마 악귀를 막는 상서로운 짐승들이 표현되어 있다.
굴뚝의 상부 역시 조형전으로 목조 건물의 형태를 모방하였고 그 위로 연기가 빠지는 연가를 설치하였다.
굴뚝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면서 각종 문양의 형태와 구성이 매우 아름다운 궁궐후원의 조형물이다.

 

 

 

 

 

 

 

 

 

 

 

 

 

 

 

 

천추전


임금이 업무를 맡아보는 건물인 사정전에 부속된 건물로 사정전 서쪽에 위치한다.
경복궁 창건 때 지어진 건물이며 동쪽에 위치하는 만춘전과 좌우대칭을 이룬다.
천추전에는 온돌이 설치되어 주로 가을과 겨울에 이용했던 건물이다.
천추전이 건립된 당시에는 사정전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임진왜란의 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고 이후 중건되면서 격리된 형태로 변모하였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복원되었고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이다.
정면의 6칸 중 2칸은 마루를 놓아 개방하였고 좌우에 온돌방이 설치되었다.
문종이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강녕전


경복궁의 내전이며 왕이 일상을 보내는 거처였으며 침전으로 사용한 전각이다.
1395년(태조 4)에 창건하고, 정도전이 건물 이름을 강녕전이라고 지었다.
강녕은 오복의 하나로, 임금으로서 해야 할 이상적인 정치이념을 궁궐 건축에 반영한 유가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강녕전의 동쪽 침전을 연생전이라고 지었고 서쪽 침전을 경성전이라고 지었다.
강녕전은 임금의 높은 신분을 상징하기에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정면 11칸, 측면 5칸의 웅장한 목조건축물이며 4단의 기단이 설치되고 가운데에는 월대를 설치하였다.

 

 

 

 

 

 

 

 

 

 

 

 

 

 

 

 

교태전


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지 3년 후인 1394년에 경복궁을 창건할 당시에는 교태전이 없었으며 그 이후에 지어졌다.
건립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세종 때에 교태전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중궁 또는 중전으로 불렀다.
교태전이라는 명칭은 주역의 64괘 중 태괘에서 따온 것인데
괘의 형상은 위로는 곤이고 아래는 건이 합쳐진 모양이다.
지천태, 즉 하늘과 땅의 기운이 조화롭게 화합하여 만물이 생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회루(국보 제224호)


정면 7칸, 측면 5칸의 장대한 누각 건물로 하층은 네모진 돌기둥을 세우고
상층에는 사방에 난간을 두르고 나무기둥을 세웠다.
주변에는 네모난 큰 연못을 파고 우측면에 세 개의 돌다리를 놓았다.
누각 건물로는 현재 국내에서 제일 큰 규모에 속한다.

 

 

 

 

 

 

 

 

 

 

 

 

향원정(보물 제1761호) 


육각형 평면을 한 정자로 연못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목조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다.
2층 규모의 익공식 기와지붕으로, 누각의 평면은 정육각형이며,
장대석으로 단을 모으고, 짧은 육모의 돌기둥을 세웠다.
1·2층을 한 나무의 기둥으로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4분합을 놓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지붕에 별다른 장식은 없다.
1867∼1873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연건평 3781.8㎡. 소장유물 7,089점(1990.3.31. 현재). 조직은 전시과·관리과로 되어 있다.
1950년 국립박물관으로 흡수된 후, 16년 만인 1966년 10월 4일 문화재관리국에서
경복궁 수정전에 1600여 점의 민속자료를 수집하여 민속박물관의 개관을 보았다.
1975년 4월 11일 경복궁 내 전 현대미술관 건물을 수리하여
문화재관리국 산하의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발족 개관하였으며,
1979년 4월 13일 국립박물관 소속으로 직제가 개정되었다.
1982년 옛 중앙박물관 건물로 이전하고, 1992년 시설공사를 벌여
지하 1층, 지상 3층에 옥탑층을 갖춘 건물로 단장하였다.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