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비봉능선'
▼ 대성문 오름길
계곡엔 얼음이 꽁꽁 얼어 있지만 영상 10도의 포근한 날씨를 보이고 있어
정릉계곡에서 대성문 오르는 영취사 주변길이 산님들의 화기로 넘쳐난다.
▼ 문수봉 문수사
대성문을 지나 보현봉 언저리를 넘어면 곧바로 대남문이다.
북한산 문수사는 해발 650m의 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뒤로는 문수봉(715m)이 병풍을 두른 듯하고 계곡 건너로 보현봉(700m)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대남문을 왼쪽에 두고 있으며 멀리 한강도 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전망지다.
▼ 통천문과 사모바위
청수 동암문을 내려서서 비봉 능선에 들어서면 통천문과 승가봉을 오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의상능선과 보현봉, 사모바위와 비봉 등의 조망이 무척 아름답다.
조선 인조 임금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쟁터로 갔다가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오니
사랑하는 여인은 청나라로 끌려가고 없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여인들은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풀려났으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산 자락 지금의 홍은동 지역에 모여 살았는데 남자는 그 여인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는 북한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돌아올 그녀를 기다리다 결국엔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구기동 쪽에서 사모바위를 보면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비봉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곳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곳엔 본떠서 만들어 놓은 비가 있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져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 향로봉
향로봉 남릉은 짧은 구간이지만 가파르고 위험한곳이 많다.
정상에서면 북한산 내,외곽의 아름답고 수려한 풍광을 한눈에 볼 수 있는곳이기도 하다.
▼ 향림당 내림길
기차촌 능선길에서 향림당쪽으로 내려오다보면 백척폭포가 있다.
겨울에는 빙폭인 백척폭포는 건폭이긴 하지만 비가 오면 멋진 경치를 연출하는 곳이다.
▼ 약도
※ 산행코-스와 시간(총 9.4km, 약 4시간40분)
오름길[4.1km, 2시간00분] : 정릉계곡→영취사→대성문→대남문→문수사→문수봉
내림길[5.3km, 2시간40분] : 청수동암문→통천문→사모바위→비봉→향로봉→향림당→독바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