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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공주의 한많은 사연을 간직한 - 덕주사 마애불

산내들.. 2014. 8. 30. 15:59

월악 '덕주사와 마애불'

 

 

 


월악산 미륵사지와 덕주사는 중원문화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신라의 마지막 마의태자와 여동생 덕주공주의 애달픈 전설이 서려있는 흔적으로
망국의 한을 안고 서라벌(경주)을 떠난 마의 태자 일행이 문경땅 마성에 이르렸는데
그날밤 꿈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이르기를 서쪽 고개를 넘으면 큰터가 있으니 절을 지어 석불을 건조하고
북두칠성이 마주보이는 영봉을 오르는 길에 마애불을 만들면 억조창생하여 자비를 베풀수있을것이라하여
꿈의 게시대로 이 곳에 마애불을 조각하고 마주 보이는 미륵리에 석불입상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태자는 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지를 굽히지 않고
금강산을 향해 떠났고 마지막 혈육인 오빠와 헤어진 공주는
절에 몸 담고 아버지인 경순왕을 그리워하며 태자의 건승을 빌었다 한다.
미륵리 석불입상은 마의 태자의 상이요 덕주사 마애불은 덕주 공주의 상으로
두 남매가 마주보기 위해 마애불은 남향이고, 석불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덕주사

 

충북 제천시 한수면 월악산 남쪽 능선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구전으로 587년(진평왕 9)에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더불어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공주가 마의태자 일행과 이곳에 들렀을 때
이 절을 세워 절 이름을 덕주사라 하였고 골짜기를 덕주골이라고 불렀다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역사적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창건자와 창건연대는 미상이다.
그때 지은 사찰은 보물 제406호인 덕주사마애불 앞에 세워졌었는데, 6·25전쟁 때 훼손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사지에서 1.7km쯤 떨어진 아랫쪽에 1970년에 중창된 것이다.

 

 

 

 

 

 

 

 

 

 

 

 

당우는 법당과 요사채 뿐이지만 어느 때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우탑 1기와
조선시대의 부도 4기가 있는데, 이 우탑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얽혀 있다.
덕주사에 승려가 많아져 절이 좁아서 새로이 부속건물을 지으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건장한 황소 한 마리가 나타나 목재를 어디론가 실어 날랐다.
뒤따라가 보니 지금 마애불이 있는 바위 아래였으므로 거기에 절을 짓고,
목재를 다 실어나른 황소가 죽은 자리에는 우탑을 세웠다고 한다.

 

 

 

 

 

 

 

 

 

 

 

 

 

 

 

 

 

 

 

 

 

 

 

 

 

 

 

 

 

 

덕주사 마애불 (보물 제406호)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월악산 남쪽 능선에 있는 마애불로 덕주사 법당지 동쪽 바위에 조각되어 있다.

현 덕주사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하며 극락보전과 산신각, 요사채를 비롯해 황소가 죽은 자리에는 우탑이 있다.
이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면에는 건물을 세운 구멍들이 있어 목조전실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얼굴은 길고 풍만하며, 소발에 육계가 큼직하다.
기다란 눈과 큼직한 코, 늘어진턱은 살찐 얼굴을 강조한 고려시대의 거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머리는 큰 체구 위에 얹혀 있고, 목은 없어졌으나 삼도는 가슴에 뚜렷하다.
통견한 법의는 늘어졌고, 옷무늬는 도식적이며 특히 양 다리의 동심타원 옷무늬는 단순하다.
대좌에는 폭넓은 연화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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