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청국장 이야기

산내들.. 2008. 11. 7. 11:32

'청국장'

 

 

 

 

거리에는 낙엽이 딩굴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 어느 가을 날
스레이트 지붕위로 하얀 굼불연기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향이 그리울때면
어머니께서 끓려주시던 구수한 담북장(청국장)이 생각 나는군.

 

 

 

 

 

 

 

 

오늘 아침을 굶고 내 속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의사분 손을 빌어 속을 한번 들려다 봤어.
근데 핑크빛 터널속이 엉망이더군.
점액이 하얗게 반사된 부분도 있고 염증이 생겨 부어 오른곳도 있었어.

 

약국에 쪽지를 내밀었더니 이름모를 약을 한아름 안겨 주는거야.
복용에 관한 설명도 길었어.
각각 다른 4가지 약이 식전 식후 식간 등 시간들도 제각히 다르니 그럴 수 밖에.
다른 사람들은 약값을 몇천원 현금으로 계산 하던데, 나는 만원이 넘게 나와서 카드로 글었지.
신경쓰기 싫어서 평소 약속을 싫어하는 나지만
이제 이넘들과 하루종일 약속을 지켜 먹히고 먹을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 하더군.
약속시간이 되어 입에 털어넣고 천정 한번 쳐다 보고 어떤 시간에는 입술로 쭉쭉 빨아 먹어 보니
단놈, 쓴놈 맛도 가지가지야.
한동안 단맛 쓴맛 지겹도록 맛 보기 생겼어.

 

왜 그러냐구?..

 

며칠 됐어.
퇴근해서 집에오니 청국장을 맛있게 끓여 놨더군.
요즘 아이들은 이것이 식탁에 올라오면 변 냄새 난다고 도망치기 일수지.
그러니 그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중년의 나이로 보면 될꺼야.
찌게 끓이느라 수고한 마눌님 치켜 새워줘야 다음에 맛있는 반찬을 기약 할 수 있기에
뽀글뽀글 끓는 청국장 속의 두부를 한숫갈 듬뿍 떠서 입에 넣고

 

'야 맛있네'.
'그럼 다들 알아주는 내 음식 솜씬데 당연하지'.

 

하지만 입 안의 두부가 너무 뜨거웠어.
마누라 금방 칭찬해 줬는데 내 뱉기 미안하기도 하여 점잖케 꾹 삼켰더니
웬걸 목에서 위까지 내려가는 느낌이 그야말로 강렬하게 느껴지지 뭐야.
그리고 위에 다다르며 멋고 난뒤 한번 더 뜨겁게 불타 오르다가 찬물에 벼락을 맞고서 식어 버렸던거야.

그야말로 뜨거운 맛을 제대로 본 거지.

 

'오늘 저녁 참 맛 있게 먹었어'.
'다행이네 잘 먹어줘서'.

 

그리고 잠 자고 일어나 식사를 했는데 음식물을 삼킬때 마다 위가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 거야.
미련 곰탱이 같은 놈.

 

이게 내 얘기 전부야.

 

이후로 나는 깨달았어.
음식을 먹을땐 멋, 품위 따윈 버리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라.
그리고 내 속도 좀 생각을 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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