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나들이

울고 넘는 박달재

산내들.. 2013. 9. 12. 09:00

울고 넘는 '박달재'

 

 

 

 

근래에는 충주에서 박달재터널을 이용해 쉽게 제천을 오고 갈 수 있다. 
예전에는 꼭 박달재를 넘어야만 제천이나 영월, 단양을 갈 수 있었는데
초가을 지는해가 눈부신 날,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나서 굽이굽이 박달재에 올랐다.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던 이 마을 처녀 금봉이와 영남의 길손선비 박달이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수십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언제나 구슬프게 흘러나오는 울고넘는박달재 노래다.

 

 

 

 

 

 

 

 

 

 

 


전해오는 박달재 사연.. 

 

조선조 중엽 경상도의 한 젊은 선비 박달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가던 도중 백운면 평동리에 이르렀다.
마침 해가 저물어 박달은 어떤 농가에 찾아 들어 하룻밤을 묵게 되었고.
이 집에는 금봉이라는 과년한 딸이 있었는데 사립문을 들어서는 순간 금봉이와 눈길이 마주쳤다.
박달은 금봉의 청초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사뭇 놀랐으며 금봉이 역시 선비 박달의 준수한 용모에 마음이 설레었다.
박달과 금봉은 금새 가까워 졌고 이튿날 곧 떠나려던 박달은 몇일을 더 묵으며 밤마다 두사람은 만나 정분을 쌓았다.
그러면서 박달이 과거에 급제한 후에 함께 살기를 굳게 약속하고 박달은 고갯길을 오르며 한양으로 떠났다.
금봉이는 도토리묵을 싸서 낭군이 될 박달도령 허리춤에 매달아 주고 이별을 했다.

 

 

 

 

 

 

 

 

서울에 온 박달은 자나깨나 금봉의 생각으로 아무일도 못하고,

금봉을 만나고 싶은 시 만을 지었다. 
난간을 스치는 봄바람은 이슬을 맺는데
구름을 보면 고운 옷이 보이고 꽃을 보면 아름다운 얼굴이 된다.
만약 천등산 꼭대기서 보지 못하면 달 밝은 밤 평동으로 만나러 간다. 
과거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였던 박달은 결국 낙방을 하고 말았으며

박달은 금봉을 볼 낯이 없어 평동에 가지 않았다.

 

 

 

 

 

 

 

 

어느 날 낙방한 박달이 금봉을 그리다가 슬픔에 잠긴 채 돌아오다가 평동 금봉이 집을 찾았는데
박달을 떠나 보내고는 날이면 날마다 고갯마루 서낭에서 박달의 장원급제 하기만을 빌든 금봉이가 
끝내 돌아오지 않는 박달을 기다리다 지쳐 3일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박달은 땅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울다 얼핏 고갯길을 쳐다본 박달은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금봉이의 환상을 보고
고갯마루까지 달려가서 금봉을 와락 끌어 안았으나 박달은 천리길 낭떨어지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후로 이 고개를 박달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박달재 목각공원..

 

지금은 박달이와 금봉이의 한풀이를 위해 박달재에 두 인물 중심의 목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조각들은 그 들의 기다림과 그리움에 목이 길게 빠지거나 눈과 팔이 튀어나오는 등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제 박달재 조각공원에는 성각 스님의 손끝을 통해 두 사람이 못다 한 사랑을 맘껏 누리고 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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