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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후에 - 후에 왕궁

산내들.. 2019. 3. 1. 20:40

후에성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왕국의 수도였던 후에에 있는 왕궁, 중국 자금성을 본따 만들었다.
1805년 자롱 황제의 명에 의해 건설하였고 1832년 민망 황제 시기에 완성되었으며 왕궁은 흐엉 강 북쪽을 향하고 있다.
프랑스 건축가인 바우 반의 설계에 따라 프랑스식과 베트남식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건축되었다.
왕궁의 성벽은 방어벽, 왕 거주지, 뚜 깜 딴 등 총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방어벽 길이는 총 9,950m, 두께는 21m에 달하며 총 10개의 문이 있다.
현재 여행객을 위해 2개의 문을 개방하고 있다.









국기대


왕의 기사라고 불리는 국기 게양대
응오 몬 남쪽에 위치하는 37m의 거대한 국기 게양대로 왕의 기사로 불리기도 한다.
1809년에 만들어졌고, 1831년 거대한 태풍이 후에를 파괴한 후 다시 만들어졌으나
1947년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969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층으로 아래층부터 자연의 섭리, 인간 세계, 천국을 상징한다.


    







응오 몬


1833년 민 망 황제 시기에 완성된 왕궁의 정문으로 높이 4.2m, 너비 3.7m이다.
다섯 개의 문 가운데 노란색 문은 왕, 그 옆 양쪽 문은 대신, 외곽 쪽의 두 문은 일반 신하가 통행했다고 한다.
태양이 정상에 오는 남문을 정문으로 삼았기 때문에 영어로 정오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 위의 누각인 푸 반 라우는 왕이 과거에 급제한 자들에게 상을 하사하던 장소였다.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바오 다이가 1945년 이곳에서 종말을 고했으며,
지붕은 봉황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태화전


자금성을 모델로 만들어진 곳으로
중국 자금성을 모델로 1803년 완공되었으며,  

응오 몬을 따라 들어가면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건물이다.
황제의 즉위식이나 국빈 영접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총 면적은 1,300km2이며 중앙당의 길이는 43.3m, 높이는 30.3m에 달한다.
태화전은 두 개의 당으로 나눠지는데 후방 중앙으로 황제가 앉았던 옥좌가 있다.

















사원


왕궁 안에는 총 5개의 사원이 있다.
응우옌 가문의 시조로 간주되는 응우옌 킴을 모시는 찌에우 미에우,
9명의 응우옌 씨를 모시는 타이 미에우, 쟈롱 황제를 모시는 흥 미에우,
응우옌 왕들을 모시는 테 미에우와 디엔 미에우가 그것이다.













9개의 왕실 세발솥


세상 만물을 상징하는 9개의 솥은 사당 앞 뜰에 위치하고 있다.
1835~1837년에 주조된 높이 2m, 지름 1m의 청동 세발솥으로서 각각의 무게는 1,600~2,600kg이며 가장 무거운 것은 2,755kg에 달한다.
각 세발솥은 4천 년 이상된 중국의 전통을 따라 인, 장, 영, 의, 순, 선, 우, 현 등 세상 만물을 가리키는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모든 세발은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크기가 클수록 왕권이 안정되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왕궁에는 내부가 상당히 화려하고 보존 상태가 좋은 극장과 서양식 후원이 있다.













각 당에는 황금판과 붉은색 칠로 된 목각 침대와 제단,

군사 무기 등이 진열되어 있으며, 여기서 왕의 기일에 제를 지내기도 했다.
응우옌 왕조를 창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던 공신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현임각도 있다.






























후에성 약도 ..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