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일출·일몰

찬란한 불빛이 드리워진 고궁의 밤 '경복궁 야경'

산내들.. 2013. 5. 23. 16:11

'경복궁 야간 나들이'

 

 

 


신록의 싱그러운 내음이 풍기는 오월! 
찬란한 불빛이 드리워진 고궁의 밤은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5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야간개장은  큰 인기를 끌고있다.
경복궁 야간개장 첫날인 22일 경복궁 관람객 수는 9000명을 돌파했으며

하루 3만명으로 제한된 인터넷 예약은 이미 매진 종료 되었다고 한다.

이번 경복궁 야간 개장은 26일까지 진행되며 관람 시간은 오후 6시30분부터 10시까지다.
관람요금은 3000원이며 장애인, 국가유공자, 만18세 이하 청소년과 65세 이상 국민은 신분증을 제시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경복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 궁궐이며 사적 제117호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정궁에 해당하는 것으로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로도 불린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경복궁을 만드는 일이었다.
1394년(태조 3)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완공되었다.
궁의 이름은 〈시경〉에 나오는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뜻으로 '군자만년개이경복'에서 따왔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으나 이곳에 왕들이 머문 기간은 1405년(태종 5) 지어진 일종의 별궁인 창덕궁에 비해 훨씬 짧다.
세종·문종·단종이 이곳에 주로 기거했으며,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 기간 동안 빈 궁궐이었다.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경복궁을 기피해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되었다.

 

 

 

 

 

 

 

 

 

흥례문..


흥례문 일곽의 가운데에는 백악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 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치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근정문에서는 왕과 문무백관이 조참의식(소조회)를 행하였다.
근정문에서 의례를 거행할 때는 영제교의 북쪽으로 정2품 이상이 서고, 남쪽으로는 정3품 이하가 자리를 잡았다. 
영제교를 중심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 3품 이하의 관원이 정렬하였다.
흥례문 행각의 서북쪽에는 서쪽 궐내각사와 빈청으로 출입하는 유화문이 자리하고 있다.
궐내각사와 빈청의 관원들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는 문이다. 

 

 

 

 

 

 

 

 

 

 

 

 

 

근정문..


경복궁 근정전의 남문이며 1395(태조 4)년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함께 세워졌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867(고종 4)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졌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바로 앞 남쪽에 위치하여, 정전으로 향하는 주 출입문의 구실을 하였다.
행각은 문의 좌우에서 직각으로 꺾여, 정전 건물을 직사각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근정전..


근정전(국보 제223호)은 경복궁의 정전이다.
왕이 신하들의 조하를 받거나 공식적인 대례 또는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근정전 영역에서는 조하를 거행하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국가의 중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정전인 근정전은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중층으로 된 근정전 건물은 2단의 높은 월대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중요행사를 치룰 수 있는 넓은마당이 있고, 그 둘레를 행각이 감싸고 있다. 

 

 

 

 

 

 

 

 

 

 

 

 

 

수정전..


수정전은 근정전 서측에 있는 건물로써, 북쪽으로는 경회루가 자리 잡고 있다.
수정전이 있는 권역은 세종 연간에는 학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주요 정책을 자문하고 건의하던 기관이다. 
한글을 창제하는 등 문치의 본산이었던 집현전이 있던 궐내각사의 지역에 해당한다.
수정전은 고종 때 중건되어 잠시 왕의 편전으로도 사용되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에는 대한제국의 군국기무처를 여기에 두고, 이후 내각청사로 사용되었다.
4면에는 행각과 남쪽의 외행각이 일곽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일제 때 훼철되고 현재는 본건물인 수정전만 남아있다.

 

 

 

 

 

 

 

 

 

 

 

 

 

 

 

 

 

경회루..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현재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것이다.
다시 지어진 경복궁의 많은 건물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회루는 중건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왔다.

 

 

 

 

 

 

 

 

 

 

 

 

 

 

 

 

 

 

 

 

 

 

 

 

 

 

 

 

 

 

 

 

 

 

 

 

 

 

 

 

 

 

 

 

 

 

 

 

 

 

 

 

 

 

 

 

 

 

 

'경복궁 야간개장'

 

 

 

경복궁은 방문객이 많은 봄철과 가을철에 한시적으로 야간개장을 실시한다.

내외국인에게 고궁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문화유산 향유 기회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다.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낮부터 전국에서 모여 든 사진가들이 경회루주변을 서서히 애워싸고
고궁에 조명이 드리워질때면 연못에 반영된 경회루를 보기위해 모여든 수 많은 인파로 북적된다.

겹겹이 세워진 카메라삼각대는 경회루를 감상하려는 수 많은 나들이객들에게 방해가 되므로
될 수 있으면 빨리 촬영을 끝내고 이웃분들에게 볼꺼리권한을 돌려 주어야 한다.  

 

 

 

 

 

 

 

 

 

 

 

 

 

 

 

 

 

 

 

 

 

 

 

 

 

 

 

 

 

 

 

 

 

 

 

 

 

 

 

 

 

 

 

 

 

 

 

 

 

 

 

 

 

 

 

 

 

 

 

 

 

광화문..


경복궁 남쪽에 있는 정문이며 1395년 경복궁의 기본구조를 갖춘 다음 1399년 그 둘레에 궁성을 쌓을 때 세웠다.
처음에는 사정문으로 불렀으나 1425년(세종 7) 집현전에서 광화문으로 바꾸었다.
현재의 문은 6·25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8년 석축 일부를 수리하고 문루를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중건한 것이다.
석축기단 위에 3개의 무지개문을 만들고, 그 위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된 문루를 두었다.
숭례문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으나 세부장식이 많이 가미되었다.
외이출목·내삼출목의 다포계 건물로 지붕의 마루에는 취두·용두·잡상을 놓았다.
목재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처마의 선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이루지 못하고
직선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 원래의 모습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