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나들이

북한산 산영루 [山映樓]

산내들.. 2015. 1. 16. 09:58

'산영루 [山映樓]'

 

 

 

 

중성문을 지나 대동문으로 향하는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용학사 갈림길에서 태고사 방향, 중흥사지 앞쪽에 위치한다. 
1902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주춧돌 13개만 남아 있었지만 
112년만인 2014년 여름에 새롭게 복원하였다.

 

 

 

 

 

 

 

 

산성계곡중에서도 비경을 간직한 곳이 상류의 두계곡이 만나는 지점인 비석거리인데
이 곳에 초석만 덩그러니 남아있던 산영루가 다시 복원되어 옛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산영루는 북한산성내 태고사계곡과 중흥사계곡이 만나는 자연 암반 위에 세워진 누각으로
산 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해 " 산영루 " 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뭇 시인, 묵객들의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며 자주 시회가 열린곳이다.

 

 

 

 

 

 

 

 

 

 

 

 

초석만 남은 산영루터  

 

 

 

 

 

 

 

 

 

 

 

 

2014년에 복원 된 산영루

 

 

 

 

 

 

 

 

 

 

 

 

 

 

 

 

 

 

 

 

산영루 앞쪽의 계류

 

 

 

 

 

 

 

 

 

 

 

 

'북한산 산영루'   

 

 

 


1717년 (숙종 43년) 옥오재 송상기의 『옥오재집』「유북한기」

 

‘중들이 산영루를 중수하였고 단청칠이 이제 막 끝났다.
자리를 펴고 앉아 난간 아래를 보니 물빛 속에 산 그림자가 드리웠다.
산과 그림자가 아래위로 이어진 모습을 보니 눈과 귀가 맑아지고
정신이 확깨는 것이 참으로 즐길만한 경치였다.’

 

 

 


1745년 (영조 21년) 성능이 편찬한 『북한지』에 월곡 오원


청려장(靑藜杖)을 짚고 이리저리 냇물의 동서를 거니노라면
겹겹이 둘러싸인 산봉우리에 서리가 내리고 날씨가 쌀쌀해진다.
가을날의 나무들, 길 떠나려는 말(馬)을 제 자리에 묶어두고
텅 빈 누각, 차마 나로 하여금 맑은 시냇물과 이별하지 못하게 해
높은 성의 웅장한 규모, 인력(人力)의 많았음을 헤아릴 수 있겠구나.
백이,숙제(伯夷,叔齊)의 그 기백, 천년이 흘렀어도 새 울음소리 속에 전해지고 있네. 
원대한 지략 없는 이 못난 서생(書生), 부끄럽기 그지없어라.
지닌 것이라곤 다만 술 한독에 나막신 두 짝뿐이로세. 

 

 

 


1761년 (영조 37년) 이덕무의 『청전관전서』「기유북한」


‘중흥사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면 숲이 하늘을 가리고 맑은 시냇물은 콸콸 흐른다.
큰 돌이 많은데, 갓 모양이나 배 모양과 같다. 쌓여서 대를 이룬 것도 가끔 있다.
대개 세검정과 비슷하지만 더 그윽하다.’

 

 

 


1779년 (정조 3년) 4월 15일 이엽의 『농은집』「북한도봉산유기」


중성문에서 다시 한두 후를 오르면 정자가 날아갈 듯 서 있다.
폭포 가운데 다가가니, 맑은 여울물이 누각 주춧돌에 부딪쳐 쏟아져 날리는 물줄기와
흩뿌리는 물방울이 마치 옥이 부서져 날리는 듯하고, 거문고 소리가 울리는 듯 했다.
한번 오르니 문득 정신과 뼈 속이 맑고 시원해짐을 깨달았다.
내가 일찍이 멀리서 누각 위의 운자에 화답했었는데, 오늘 올라보니
오히려‘위태로운 돌이 층층이 쌓인 성 속에 높은 누각이 어지러운 폭포 가운데 있네’

 

 

 


1779년 이엽과 함께 동행한 유광천의 『귀락와집』「유삼각산기」


‘맑은 여울이 돌아흐르는 곳에 우뚝 선 붉은 누각은 바로 산영루였다.
아로새긴 난간이 시내에 잠겨, 석양에 붉은 물결 일렁이고,
숲에 이내가 자욱하여 푸른 빛이 성긴 창에 떨어지니,
올라보니 그 기이함을 곱절 더하다.

 

 

 


1794년 다산 정약용

 

 험한 돌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에 날개 돋쳐 날아갈 것 같구나. 
십여 곳 절간 종소리 가을빛 저물어가고
온 산의 누런 잎에 물소리 차가워라. 
숲 속에 말 매어두고 얘기 꽃을 피우는데
구름 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해 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데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1816년 추사 김정희


한 곳에 또 한 곳이라 붉은 숲속엔
감도는 시내에다 갈라진 산이
머언 종은 비에 잠겨 고요해지고
범패(梵唄)는 구름 속에 싸늘하구나.
돌 늙으니 전생을 추억하여라.
산 깊으니 종일토록 구경 바쁘네
연기 안개 언제나 장애 없으니
오솔길이 사람 향해 너그럽구려.

 

 

 

 

 

 

 

 

1896년 독일인 엘러가 촬영한 산영루.  

그당시 산영루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지만 주변은 거의 민둥산에 가깝다.

예전엔 땔감으로 밥을짓고 굼불을 지피다 보니 대부분의 마을 인근의 산이 벌거숭이가 되었다고 한다.    

 

 

 

 

 

 

 

 

 

 

 

 

혜촌 김학수옹의 그림

 

 

 

 

 

 

 

 

이제 2014년 맑은 계류의 반석위에 산영루가 복원되어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찾던 수려한 경관을 되찾게 되었다.
면적당 탐방객이 세계 1위인 북한산의 옛 명소의 명성 그대로.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