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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 공산성

산내들.. 2017. 6. 5. 07:47

공주산성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문주왕 1)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 538년(성왕 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다.









해발 110m인 공산의 정상에서 서쪽의 봉우리까지 에워싼 포곡식 산성이며 성의 둘레는 2450m이다.
평면으로는 동서 약 800m, 남북이 약 400m이며 사방에 석벽이 남아 있다.
원래 토성이었는데 조선 중기에 석성으로 개축된 것이다.









공산성의 서문 - 공산성 금서루


서문은 본래 유지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 문루와 함께 새로운 형태로 문루의 복원이 이루어져 있다.
복원된 문루는 공산성 서쪽 성곽선에 연결되게 성선을 연결하면서 성의 입구를 개구식으로 내면서 그 위에 문루를 올린 상태이다.
더불어 본래의 문지는 성내의 출입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복원된 문루는 외형만 겸비하고 출입시설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공산성 쌍수정


쌍수정은 공산성 진남루 부근의 서쪽 고지대에 위치한 정각이다.
원래 그 터는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공산성 파천시 머물렀던 장소이며, 이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인조는 환도시 쌍수에 정3품 대부작을 하사하였는데 그 후 나무는 죽고 구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유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관찰사 이수항이 영조 10년에 쌍수정을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공산성 추정왕궁지


공산성 내 서쪽의 표고 85m의 정상부, 종래 쌍수정 광장으로 불려 왔던 약 6,800㎡의 면적이 추정 왕궁지이다.
유적은 건물지를 비롯하여 용수를 저장할 수 있는 연못과 목곽고 및 저장구덩이 등이 확인되었는데 
확인된 건물지로는 반지하식 건물지, 굴건식 주공을 사용한 건물지, 적심석을 사용한 건물지 2개소와 연지, 저장혈, 목곽고 등이 있다.






 




공산성의 남문 - 공산성 진남루


공산성의 출입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이 진남루는 성의 남문이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높은 석축기단을 좌우로 대칭시켜 조성한 후 두 석축 기단에 걸쳐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내고 있다.
원래 토성이었던 공산성이 지금과 같은 석축성으로 개축된 것은 조선 초기의 일로 이 진남루 역시 그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 후 여러 차례 수축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건물은 1971년 전부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공산성의 동문 - 공산성 영동루


공산성 중심부에서 남동방향으로 토성이 위치하였는데
본래 여기에는 공산성의 동문이 있었으나 훼손되어 단지 유지만 남아 전하던 곳이다.
현재 이 공산성의 동문은 정비와 함께 영동루가 복원되어 있다.
문루는 조선시대 성문의 일반적 형식에 따른 것이며 규모는 기록에 남아있는 삼칸규모라는 내용에 맞추어 건립하였다.









공산성 광복루


광복루는 공산성의 동쪽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는 누각이다.
이 곳은 공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토성이 겹성으로 위치한 곳인데
공산성 두 개의 봉우리 중 서쪽의 봉우리에는 쌍수정이 있고 동쪽의 봉우리에는 광복루가 있다.









공산성 임류각지


임류각지는 공산성의 산정에 위치한 광복루에서 서쪽으로 약 150m 정도 떨어진 산의 중턱 서향 사면에 위치한다.
임류각은 삼국시대 백제가 공주로 천도한 후, 약 25년이 지난 백제 제24대 동성왕 22년 (493)에 축조된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이 남아있는 건물이다.
조사된 유지는 정비되어 있으며, 건물의 문화적, 학술적 중요성을 감안하여 본래의 유지에서 약간 위쪽에 새로이 복원되어 있다.
더불어 임류각에 대한 복원도 이루어져 정면 6칸, 측면 7칸의 이층 형태의 누각 건물이 광복루 아래 광장에 복원되어 있다.









공산성 만하루와 연지


연지는 공산성 북쪽의 금강과 영은사사이에 있는 연못이다.
공산성에는 우물이 3개 있었다고 전해지나 이곳과 쌍수정남쪽의 것 2개만 확인되고 있다.
발굴전까지는 흙으로 덮여 있었으나 1982년부터 1983년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확인. 정비한 것이다.
금강 가까이에서 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지형상의 조건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공산성 석빙고 잠종냉장고


한겨울 금강의 깨끗한 얼음을 채취하여 왕겨에 싸서 석빙고에 저장해 두었다가 더운 여름에 꺼내 썼다고 한다.
그 석빙고는 일제강점기에는 한약재나 얼음을 보관하는 저장창고로 사용 되었으며  
광복 이후에는 농가에 누에씨를 보급하기 위한 저장시설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공산성의 북문 - 공산성 공북루


공북루는 공산성에 설치된 문루 중 북문으로 성문을 나서면 나루를 통하여 금강을 건너게 되어 있다.
선조 36년인 1603년에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시축 후 수 차례에 걸쳐 개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나
현존의 것은 본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문루 건축의 대표적 예로 꼽는다.
정면 5칸에 측면 3칸으로 면적은 남문인 진남루의 2배 가량이며, 고주를 사용한 이층의 다락집 형태로 고창 읍성의 공북루와 유사한 모습이다.
각 문의 크기는 등간격이며 누의 중앙 어칸에는 출입문을 달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근세까지 문비가 남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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